어휴 써야지 뭐 어떡해

Glen Allachie 10 Year Old Cask Strength Batch 7

선선하고 우중충한 에든버러에 도착했다. 간만에 호젓한 날씨가 반가운 밤이다. 엄마는 기차역에 도착하자마자 앞으로 피서는 스코틀랜드로 와야겠다고 중얼거렸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와 사촌누나랑 스코틀랜드 일정을 계획하면서 위스키 증류소 방문은 자연스럽게 나중으로 미뤄졌다. 대부분의 디스틸러리들의 접근성이 안 좋을 뿐더러 셋 중에서 증류소를 찾을 정도로 위스키를 좋아하는 사람은 나 밖에 없으니 그저 모든 것이 순리대로 흘러간 것 뿐이다. 애초에 특별한 기대 없이 왔는지라 실망할 여지는 딱히 없지만서두, 구글 지도를 통해 내일 방문할 하이랜드의 글렌코(Glencoe)로부터 오반(Oban) 디스틸러리가 얼마나 가까운지 너무나도 직관적으로 확인해버렸기에 하루종일 위스키 생각이 머리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해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제일 먼저 눈에 띄는 바에서 제일 먼저 보이는 글렌알라키 10년을 주문해서 홀짝했다.

글렌알라키는 역시 셰리캐스크의 신흥 강자임을 확인했다. 대다수의 스카치하우스의 역사가 한 세기를 훌쩍 넘어가는 게 예사이니 1960년대 설립된 글렌알라키는 아주 젊은 축에 속한다. 셰리 캐스크를 좋아하는 단골 바 사장님이 추천해줬던 12년산도 좋아서 여러번 마셨는데 10년 cs 배치 7번 역시 듣던대로 아주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오로로소(oloroso), px 펀천(puncheon) 숙성. (얼핏 찾아보니 ‘펀천’은 500리터 이상의 캐스크를 지칭하는 듯 하다. 배럴이나 캐스크가 아닌 굳이 펀천이라 표현한 데 이유가 있을 듯 하지만 확인이 필요하다.)

초콜릿, 육두구. 약간 콩 같은 뉘앙스가 있는데 커피 같기도 하고 풋콩 같기도 하다. 셰리 캐스크에서 흔한 프루티함은 약한 편이다. 좀 더 중후하고 스파이시한 와중에 오렌지 껍질, 나무 껍질의 흔적도 느껴진다. CS 56.8도지만 무리 없이 넘어간다. 이런 계절에는 온더락으로도 괜찮을 거 같다.

셰리 캐스크가 바닥이 났다, 요즘 생산되는 스카치는 옛날만치 터프하지 못하다, 00는 단종될 것 같다… 등 스카치에 관한 소문이 무성한 가운데 지속되는 고물가, 아직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물류문제까지 겹쳐 이 시장은 약 3-4년째 흉흉하다. 그래서 어느때보다도 올드보틀에 대한 환상이 무럭무럭 자라고, 나로선 평소 잘 마시지 않던 맥켈란이 마시고 싶어지기도 하고… 하지만 아란, 글렌알라키 같은 젊은 증류소가 생산하는 이런 위스키를 경험하니 어느 분야나 그렇듯 이 시장에도 소장파격의 생산자가 생겨나고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으니 전통과 과거에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겠거니 한다. (글렌알라키 라벨의 ‘고인돌 가족’스러운 폰트는 앞으로도 도무지 긍정할 수 없을 거 같다. 새로 디자인한 라벨도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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