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휴 써야지 뭐 어떡해

요즘 진짜 공부 안해도 너무 안함

가. 날씨가 본격적으로 어둡고 우중충해지기 시작했다.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는데 비가 왕창 쏟아지고 있었으나 걸음을 되돌릴 수 없어서 어쨌든 쫄딱 맞고 계단 타고 방에 돌아 왔더니 비가 그쳐 있는 하늘을 보는 심정에 대해서 논하시오.

나. 오묘한 긴장감을 안은 채 매주 분석철학 세미나에 참석한다. 나에게 비교적 익숙한 이른바 ‘프랑스철학’ (이 명명 자체가 ‘일본사’라는 범주가 그렇듯,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민족적 단일성을 사후적으로 구성한다는 점에서 늘 문제적이지만)에서 중요시되는 엄밀함과는 또 다른 결의 엄밀함을 이곳에서 체험하게 된다. 흔한 오해와 달리, 언뜻 언어의 유희를 적극적으로 장려하는 듯 보이는 프랑스철학 역시 발화되는 단어 하나, 개념 하나의 의미를 끝까지 밀고 나갈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결코 느슨하지 않다.

다. 파리 여행 중 친구들과 잠시 떨어져 혼자 새소년 공연을 보러 갔다. 신보에 대한 우호적인 마음이 너무 컸던 탓인지, 아니면 이미 한국에서 여러 번 실물로 봐왔던 탓인지, 기대만큼 크게 즐기지는 못했다. 2021년 예스24홀 공연을 제외하면 새소년은 늘 락 페스티벌 무대에서만 봐왔는데, 이번 파리 공연의 전체적인 구성도 그 무대들과 꽤 닮아 있었다. 황소윤의 폭발적인 기타 솔로를 중심으로 한 곡들이 주를 이루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모든 곡이 비슷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연달아 연주된 서너 곡은 얼개가 이상할 만큼 닮아 있었다. 가사를 넘어서는 호소력이 있다 하더라도, 해외 관객을 전혀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었을 테고, 그 결과 내가 특히 좋아하는 잔잔한 곡들은 자연스럽게 밀려난 게 아닐까 짐작해본다. 어쩌면 그냥 내가 늙어서, 예전만큼 공연을 즐기지 못하게 된 걸지도 모른다. 실제로 막바지에는 나도 모르게 ‘제발 앵콜 없이 깔끔하게 끝내고 빨리 호텔 가서 뻗을 수 있게 해주세요’라고 속으로 빌고 있었다. 그래도 1집 첫 곡을 듣지 못한 건 많이 아쉽다.

라. 역시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고, 루벤에서 보낸 1년을 뒤돌아보면 나는 분명히 현상학에 물들었다. 사실 후설과 현상학은 애초에 루벤을 택한 중요한 계기였고, 스스로도 그 전통에 깊이 잠기기를 어느 정도는 원하고 있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영미권 학계에서 데리다를 흔히 ‘프렌치 하이데거’로 호명하는 방식과는 달리, 그를 한 명의 후설리언으로 – 후설의 독자이자 제자로 – 새기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후설 현상학을 제대로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지금의 관심사는 자연스레 철학사, 특히 데카르트 연구로 기울어 있다. 이러다 정말 나도 모르게 플라톤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아찔하다. 다만 현상학적 전통에 점점 더 물들수록, 한때 중심에 두었던 동아시아학, 맑스, 푸코, 포스트식민주의로부터 서서히 멀어지고 있다는 감각이 따라붙는다. 그 어긋남에서 오는 멀미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갑작스러운 위기감에 사이토 고헤이를 다시 펼치고, 서마학 세미나를 통해 『자본론』을 다시 곱씹고 있지만, 예전만큼 몸에 붙지 않는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지금으로써는 역량의 한계를 인정하고, 당분간은 (무려) 데카르트 하나를 소화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나오키 사카이의 저작에서는 여전히 한 줄기 빛을 본다. 돌이켜보면 데리다, 현상학, 후설, 동아시아학, 포스트식민주의, 푸코, 맑스에 대한 관심은 모두 학부 시절 사카이의 글을 탐독하던 경험으로 되돌아간다. 언젠가는 이 서로 다른 물길들이 다시 만나 상호적으로 물들이기를 바라면서, 오늘도 데카르트를 곱씹어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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