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휴 써야지 뭐 어떡해

다상수면

말라가 여행 내내 다상수면에 시달렸는데, 루벤에 돌아오자마자 밤 10시에 눈을 감고 새벽 6시에 개운하게 눈을 뜨는 일상이 거짓말처럼 복구되었다. Y의 추천으로 구매한 디펜히드라민이 그저께 도착했는데… 수면 패턴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러다 문득, 여행하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많이 신경 쓰고 긴장하며 지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별생각없이 《경도를 기다리며》라는 드라마를 챙겨본다. 회차가 지날수록 대사의 어색함이 도가 지나쳐 견디기 힘든 지경까지 되고 있지만 뭐 이게 요즘 K-로맨스물의 방향인가?한다. 8회까지 방영한 지금, 시리즈 전체를 꾸준히 관통할 것처럼 보였던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의 흔적은 온데간데 없고, 모든 면에서 뻔하디 뻔해진다는 인상만 강해진다. 비단 이 드라마만 그런 건 아니겠고, 그냥 이런 문법이 많지 싶다. 사실 좋아하는 원지안 배우가 주연이라는 이유로 시작했을 뿐이라, 아마 여기까지일 것 같다. 차라리 평소에 주구장창 돌려보는 메드맨이나 어바웃타임을 한번씩 더 보는 게 답이다. 역시 아는 맛이 무서운 맛… 다만 8회 마지막 부분에 갑자기 햇빛 듬뿍 머금은 말라가가 등장해 잠시 어리둥절해졌다.

여행 마지막 날 공항으로 향하기 전에 잠깐 짬내서 퐁피두 센터를 둘러봤다.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명성에 걸맞게 익숙한 작품들이 많았는데, 유독 샬로트 페리앙 가구들이 왜 그렇게나 많았는지 조금 의아했다. 설렁설렁 둘러보다가 카트린 말라부를 우연히 마주쳤다. 말을 걸어볼까 잠깐 고민했지만, 역시 그런 성격은 못 되나보다. 아마 Y가 남겨두고 간 선물을 전부 다 해치웠더라면, 그땐 망설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새삼, 시간이 꽤 흐른 지금까지도 인생의 여러 새로운 경험을 Y 덕분에 하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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