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휴 써야지 뭐 어떡해

La Mer

특별한 날 특별한 일을 하는 것은 어쩐지 저어되어 연말연시라는 이유로 개인적인 소회를 남긴 일이 별로 없었는데, 올해는 어쩐지 몇 마디라도 적고 싶다. 별것 아닌 일에까지 반골 행세하는 것은 이제 조금 지겹달지, 혹은 기억하는 일이 더는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어 기록의 가치를 이해하게 되었달지.

지난 한 해도, 매해 그러했듯 나름 다사다난했다. 읽고 쓰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너무 지겨워 다 그만두고 싶은 날들이 있었다. 해마다 탈피하듯 한 걸음 나아가고, 또 뒷걸음질하기를 거의 10년. 그 사이 나는 오래 침묵하는 법을 배웠고, 원인은 있으나 이유는 없는 일들이 있음을 받아들였고, 그럼에도 불안은 빈번했으며, 원하는 만큼 많은 글을 읽고 쓰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많은 친구들을 만났고, 또 헤어졌다. 지금은 그저 불안해하면서도 너무 깊은 냉소와 절망에 빠지지 않고 어찌저찌 살아남은 스스로를, 조금은 칭찬하고 싶다.

특별히 철이 들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철학은, 특히나 형이상학은, 철들지 않는 이들의 곁에 머문다. 많은 철학사가들이 주지하듯 놀라움이야말로 철학의 여정을 개시하는 원초적인 정념이다. 그렇기 때문에 철학자는 (다른 것들을 비롯하여) 경탄할 줄 아는 어린아이의 영혼을 지녀야 한다. 철학 걸음마를 아장아장 떼는 요즘, 주위에, 그리고 내 안에 잠시나마 경탄의 빛이 스칠 때 가장 기쁘다.

언제선가부터 “망년회”가 “송년회”로 점잖게 대체되었듯, 흥청망청, 엉망진창 취하는 풍경을 조용히 관조적으로만 바라본다. 원체 술을 많이 마시지도 자주 마시지도 않아서 더욱 그렇다. 엄마는 한국에서 새해를 맞아 케이크를 먹었고, 오랜만에 얼굴 보면서 통화한 W는 라멘을 먹었고 (서울의 라멘붐을 멀리서나 지켜만보고 있자니 아주 헛헛하다 헛헛해), 세계 곳곳에서 지내는 다른 친구들은 여태 제대로 인사를 하지 못했다. 나는 친구 S와 단골 바에 가서 조용히 난로의 장작이 타는 것을 바라보며 위스키랑 샴페인을 마셨다. 새해로 넘어가는 순간에는 일면식도 없는 바 손님들과 악수와 포옹을 나누었다.

새해의 다짐이란 것을 해본 지 오래되었는데, 올해의 다짐이라면 허락되는 한 사랑하는 이들의 곁을 최대한 지킬 것, 자꾸만 자꾸만 경탄할 것, 시간을 보다 체계적으로 살아낼 것, 그리고 불어를 갈고닦을 것. 새해 첫 곡으로는 Julio Igelsias의 “La Mer”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