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악몽을 꾸고 이른 시간에 잠에서 깼다. 잠금화면에는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 이른바 ‘핀포인트식 축출’ 관련 뉴스가 빼곡했다. 꼭두새벽부터 자세를 고쳐 앉아 대낮이 될 때까지 관련 소식을 들여다봤다. 올라오는 기사마다 미국의 무법성은 더욱 처참하게 갱신되었고, 몇 주 전 미리 예매해 두었던 영화를 보고 나와 휴대폰을 다시 켰을 즈음에는 마두로 대통령이 뉴욕으로 이송 중이라는 속보를 접했다.
단연 브뤼셀(유럽연합)의 나몰라라 하는 반응에 가장 기가 찼고, “미국이 설마 그렇게까지 경솔하게 행동하겠느냐”는 모 교수의 카톡에는 그만 눈을 질끈 감았다. 장기 20세기 동안 미국이 41차례에 걸쳐 남아메리카 국가의 정부에 국정 개입을 하며 정권을 교체해 왔다는 역사를 혹시나 모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두고서라도(ㅎ), 예전 같은 국제 질서가 쇠퇴한 마당에 권력과 자본은 이미 노골적이고 일관된 욕망을 드러내 왔는데, 그걸 애써 무시하는 학자는 권력의 졸개이거나 판단력이 없는 사람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책임을 지지 않는 발언이라는 점에서는 어린아이만도 못하다. 하다못해 친구의 다섯 살짜리 아들도 중요한 일에는 책임이 걸린다는 걸 알고, 가위바위보 내기를 제안할 때조차 신중해진다.
곧이어 발표된 트럼프의 공식 입장 – “적정한 정권 이양이 이뤄질 때까지 베네수엘라에 주둔·통치하겠다” – 만으로도 한동안 벙쪄있기에 충분했을 텐데, 지난 며칠 동안은 비현실적인 뉴스가 연달아 쏟아졌다. 방금 전에는 미네소타에서 이민 단속 요원의 총격으로 30대 여성이 사망했다는 소식, 그리고 미 백악관이 미국의 국가 이익에 반한다는 이유로 66개 국제기구에서 탈퇴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는 소식까지 접했다.
가자지구 집단학살 소식이 처음 들려왔을 무렵부터 느꼈던 건, 세상 돌아가는게 적어도 나에겐 어떤 선을 훨씬 넘어버린 것 같다. 이제 더이상 “아 그래도 나는 내 할일을 충실하게 하고 일상을 살아야지”가 매끄럽게 안되는 느낌이다. 이 상황에서 내가 철학적인 논증 훈련을 하고 보다 세심하게 텍스트를 독해하는 연습을 하는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잠시 모르겠을 때가 있고, 늘 깔려있는 잔잔한 불안과 분노 때문에 무엇을 하든 괴로운 시간들이 자꾸만 늘어난다아아악
“rogue States 가운데 가장 퇴행적이고 가장 폭력적이며, 가장 파괴적인 불량국가는 먼저 미국일 것이며, 때때로 미국의 동맹국들일 것입니다.” (자크 데리다, “불량배들”, 206쪽, 2003년)”
이럴 때일수록 머리를 식히고 냉정하게 국제정세 분석을 공부하는 게 더 시급하다. 미국의 끔찍함을 저주하는 수준에서 멈춘다면, 게으른 습관적 반미주의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금요일에 페이퍼 제출하자마자 백승욱 선생 책을 다시 펼쳐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