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로는 한 예능에서 부친의 장례식을 치르는 중에 웃음보가 터지고 말았던 순간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장례식장에 사람이 뜸해진 새벽 무렵 외조부께서 불러다가 네가 사람 새끼냐고 꾸짖었고, 그제서야 대성통곡을 했다는 에피소드였다. 나중에 보니 웃음을 참느라 허벅지를 때리고 꼬집어서 피멍이 들어 있었다고 그랬다. 김수로는 이걸 웃긴 일화로 전달하지만, 그토록 슬픈 날 자신이 그랬다는 자책감이 아직도 해결이 되지 않는다고 눈물을 글썽이며 덧붙인다. 나는 이것이 책임질 수 없는 일을 책임지려고 하는 인간의 굴레라고 생각한다. 정확히 설명할 수 없지만, 과연 김수로가 그날 웃지 않았다고 해서 자책감이 없었을까? 인간은 자신이 도저히 어찌 할 도리가 없었던 일에 대해서도 기어코 책임감을, 죄책감을 느끼고 만다. 친구와 일상적으로 약속을 잡았는데, 친구가 약속 장소에 오다가 변고를 당했다고 생각해 보자. 거기에 내 책임은 없다. 나는 무구하다. 하지만 계속 곱씹고야 마는 것이다. 그날 만나기로 하지 않았더라면, 그 장소가 아니었더라면, 그 시간이 아니었더라면, 등등. 이것은 이성의 논리도, 감성적인 책임도 아닌 무언가다: 이유를 발명해서라도 기필코 책임지려 하는 것. 아마 김수로는 저런 식이 아니었더라도 도저히 풀리지 않는, 그래서 무한한 책임의 구석을 찾아냈을 것이고, 그럼으로써 스스로 징벌을 내렸으리라고 생각한다. 아주 사소한 것조차 충분히 그런 구실이 될 수 있다. 누군가를 상실하고 나서야 애틋해진다는 건 그런 것이다. 설령 함께 지낸 그 모든 시간이 기쁨으로 충만했을지라도, 지나간 시간 전체가 회한으로 물들고 만다. 그런데 그런 충만함은 좀체 없다. 그러니까 차라리 다른 누군가가, 이를테면 외조부 같은 타자가 꾸짖어 주는 것이 티끌만큼 나은 셈이다. 자책의 회로를 간신히 외재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
-
설상가상
One Battle After Another를 아주 즐겁게 봤다. 영화를 보고 나니까 적절한 한국어 번역어는 “끝없는 전투”보다는 “설상가상”일듯하다. 제일 스타인 디카프리오를 러닝타임 내내 쩌리로서 구심점으로 만든 것부터가 어처구니없고 유쾌하다. 요 근래 본 영화 중 리듬(특히 도주 시퀀스의 운율)이 가장 여운에 남았고 아직도 체이스 인피니티에게 빠져있다. 그 외에도 여러가지 생각이 드는데… 일단 서로 다른 방향의 운동이 격렬하게 교차하는, 그래서 어느 순간 자신의 원래 방향조차 배반해버리는 PTA 특유의 산만한 운동들이 가장 정련된 형태로 펼쳐진다는 것만 짚고 싶다.
-
실로 힘든 것은 사이에 머무는 것이다.
서양 철학을 공부하는 이들 중에 문제의식마저 완전히 서구적이게 되는 경우를 종종 본다. 나도 예외라고 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누구나 마음속 깊이에선 자기야말로 ‘중도’다. 여기에는 아무래도 어쩔 수 없는 면이 있지만… 문제는 그 경화의 정도다. 요즘 말로다가 XXX무새(데리다무새?)가 되는 것, 말과 글이 뿌리 내릴 토양의 차이에 대해 맹목적이게 되는 것. 그 반대편에는 국학(?)으로의 급격한 회귀가 있다. ‘비서구성'(e.g. 한국성)을 본질로 치켜세우고 비서구적인 근원 쪽으로 갑작스럽게, 깊이 개종하는 것. 특히 근래의 각종 K-XXXXX 붐은 이 “연어적” 회귀를 손쉽게 정당화하게끔 한다. 둘 모두 몰역사적이기에 경계해야 한다. 실로 힘든 것은 사이에 머무는 일이다.
-
요즘 진짜 공부 안해도 너무 안함
Subscribe to continue reading
Subscribe to get access to the rest of this post and other subscriber-only content.
-
끝에도 끝이 있었으면 좋겠어
시험 해도해도 끝이 없다아아 제발 살려ㅈ ㅜㅓ…
-
무한한 다정감 아이의 전능감 벌레들 합창단
파리 공연 티켓 예매 완
-
Do Ho Suh: Walk the House at Tate Modern
테이트 모던에서 개최한 서도호 개인전을 혼자 둘러보는 것으로 런던에서의 시간을 마무리했다.
천으로 재구성된 복수의 ‘집’을 한 공간 안에 중첩시키는 서도호의 작업은, 디아스포라적 삶을 살아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어딘가 익숙하다고 느낄 만한 것을 품고 있다. 그럼에도 서도호의 작품들이 유독 낯설지 않게 다가오는 건, 그가 오랜 시간 천착해 온 주제들 – ‘집’, ‘공간’, ‘정체성’, ‘이동’ 등 – 에 내가 깊이 공명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정확히 어떤 지점에서 좋았고, 또 어떤 지점에서 의구심이 들었는지에 대해 쓰고 싶은데, 솔직히 아직 잘 모르겠다. 루벤으로 돌아오자마자 시험 기간 모드로 돌입해 버린 나머지 공상할 여유가 딱히 없었다. 그래서 서도호가 아닌 백남준을 통해, ‘집’이 아닌 ‘언어’를 통해 우회적으로나마 감상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1992년 9월, 백남준은 “미디어에 대한 모든 연구는 언어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쓴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서 그가 보고하는 일화는 우리에게 주어진 출발점이 즉시 언어’들’임을 알린다. 일제강점기에 초등학교를 다녔던 백남준은 한국어와 일본어를 수시로 횡단하면서 유년기를 보냈는데, 그런 유년기에 대한 이야기는 “영어로” 쓰여지고 있다. 두 쪽이 채 지나지 않아 세 개의 언어가 교차한다. 그러니까 얼핏 소위 ‘언어적 전회’에 참여할 것처럼 보이는 저 첫 문장을 곧바로 고쳐 읽어야 할 것이다. ‘미디어에 대한 모든 연구는 언어들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를 비롯해서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까지 6개 국어를 더듬거릴지언정 할 줄 알았던 백남준에게 이 복수성은 어쩌면 새삼스레 거론할 필요도 없을 만큼 당연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바로 뒤에 이어지는 글 「몇몇 프랑스인(?) 친구들」의 물음표는 우리의 추측을 확증한다. 프랑스인이라는 카테고리는 자신의 프랑스인 친구들을 수식하기에 한참 미진하다. 그들은 그런 것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이처럼 복수성은 그것만으로도 정체성, 동일성, ‘identité’에 대한 우리 사고의 결을 바꾼다.
프랑스 철학자 데리다는 이와 정반대의 장소에서 출발해서 정확히 같은 지점에 도착한다. “저는 하나의 언어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제 것이 아닙니다.” 후설 연구자로 학문적 여정을 개시했고 후일 미국 유수의 대학에서 강의를 하게 될 데리다는 물론 독어나 영어를 할 줄 알았다. 그런 그가 자기가 할 줄 아는 유일한 언어인 프랑스어가 자기의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자신이 재학 중이던 알제(Alger)의 중학교에 프랑스 “본토” 출신의 교사가 부임했을 때의 놀라움과 연결되어 있다. 그 교사의 불어는 자신의 것과 같은 불어였지만 같은 불어가 아니었고, 여태 자신이 자신의 언어라고 생각했던 무언가가 실은 타자의 언어였음을 데리다는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자신의 언어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는 체험을 데리다는 보편적인 것으로 올려세우고자 한다.
데리다가 자신의 불어를 표준적이고 순수한 것으로 표백하기 위해 기울인 노력은 잘 알려져 있다. 그렇게 표백하고 난 뒤 즉시 ‘오염’의 사유를 향해 질주했다는 것 역시 잘 알려져 있다. 데리다는 후일 『타자의 단일언어』로 출간된 한 강연에서 회고한다. “제대로 된 프랑스어로 말하기, 순수한 프랑스어로 말하기. … 이런 과장법(‘프랑스인보다 더 프랑스적으로’, 더 ‘순수하게 프랑스적으로’ … 나 자신이 언제나 순수성과 순수화 일반을 비판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과도하고 충동적인 극단주의를 물론 나는 학교에서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같은 강연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투리의] 억양은 공적 발화의 지성적인 위엄과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시적 발화가 지닌 자질과는 더욱 안 어울린다. … 억양은 언어 일반과 어떤 육탄전을 벌인다. 그것은 강세를 두는 것보다 더 많이 말한다.”
그러니까 이것은 바벨탑보다 더 시원적인 사태다. 독일어, 일본어, 영어처럼 여러 언어들이 갈라지기 이전에 하나의 언어가 이미 여러 갈래로 갈라진다. 공적, 시적, 표준적, … 그리고 그 대당들. 그래서 어떤 의미로는 도대체 “하나의” 언어라는 게 존재하지 않고, 따라서 누군가가 그걸 전유할 수도 없다. 안이하게 어떤 언어가 ‘자기의’ 언어라고 말할 수 없다는 의미다. (‘집’에 대해서도 동일한 통찰이 유효하지 않을까? 그리고 전시를 보는 내내 느꼈던 묘한 위화감은 서도호의 작품들이 복수의 집’들’을 이야기하는 한편, 개개의 집 또한 항상 이미 여러 개의 집들로 갈라진다는 사실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 했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언어에 대한 연구로서 미디어에 대한 연구는 이 다수성과 그에서 연유하는 전유 불가능성에 대한 연구로 귀착되어야 할 것이다.
-
우-리, 무더운 여름, 그리-고 쓸쓸한 가을, 차가-웠던 겨울을 지나, 같이 걷네 🎵
퍽이나 오랜만입니다… 또 소생 심장 요동치게 하는 무언가를 들고 오셨군요… 얼른 시험 공부해야 되는데… 침대 속에 파묻혀서 주구장창 듣게 생겼…
-
Cutty Sark
아빠랑 함께 여행하면서, 혼자였더라면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곳들을 찾아갔다. 우려했던 대로 질색한 관광지(가령 버킹엄 궁전)가 대부분이었지만 뜻밖에도 흥미롭게 둘러본 곳들이 있었다. 템즈강 유람선을 타고 들른 커티삭호(Cutty Sark)는 그런 예외 중 하나였다.
그리니치 부두 한켠에 영구 정박되어 있는 커티삭 호는 영국의 쾌속범선이었다. 1869년에 주조된 이 범선은 당시 중국에서 영국으로 차를 운반해오던 가장 빠른 범선 중 하나였다고 한다. ‘커티삭(Cutty Sark)’이라는 이름은 스코틀랜드어로 짧은 치마를 뜻하며, 시인 로버트 번스의 시 「Tam o’ Shanter」에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라고도 하는데, 이게 커티삭호와 어떻게 연관되는지, 그리고 유명세로 치면 범선을 앞질러도 한참 앞지른 블렌디드 위스키 ‘커티삭’과 어떻게 엮이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아빠는 선박의 구조와 속도에 넋이 나간 와중에 이 배를 둘러싼 대영제국의 해양 패권사를 내게 숨 돌릴 틈 없이 퍼부었고, 나는 멀찍이 하루키에 대한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
소설 1Q84에서 아오마메는 커티삭하이볼을 주문하는 남자를 원나잇스탠드의 상대로 선택하고 그의 관심을 끌기 위해 같은 술을 시킨다. 싱글 몰트 따위 가려서 마시는 짐짓 까다로운 듯한 사람은 침대에서 그저그렇다는 게 아오마메의 지혜로운 의견이다.
가끔은 커티삭처럼 개성 없고 마일드한 술이 너무 좋다. 술에 물탄 듯, 물에 술 탄듯 하이볼로 마시면 천천히, 오래, 많이 마실 수 있고… 그러고 보니 ‘천천히. 오래. 많이.’가 아오마메가 원하는 밤의 모습이었을 수ㄷ… 쿨럭.